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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 종로 M학원 측은 김포외고 입학홍보부장 이모(51겷셕殆돛? 씨가 유출한 시험 문제 38문항 중 13문항을 골라 A4용지 1장 양면에 인쇄한 뒤 170부를 복사해 입시 당일인 지난달 30일 아침 학원생들에게 배포했다. 이중 100부는 김포외고 수험생 120여 명이 탄 버스 3대에서, 나머지 70부는 명지·안양외고 등에 응시한 수험생 110여 명이 탄 버스 2대에서 배포됐다고 학원 측 관계자들은 진술했다. 사전 유출되어 학원 응시생들에게 배포된 입시 문제가 김포외고뿐 아니라 명지·안양외고 등에서도 출제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해당 학교들에서도 일부 혹은 전부 합격 취소 등 조치가 불가피하게 됐다”(연합뉴스, 07. 11. 12).
이 기사를 보면서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라는 사람이다. 그는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과 함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이론가다. 마르쿠제는 1964년 「일차원적 인간」이란 유명한 책을 발표했다. 마르쿠제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자본주의적 욕구를 이식시켜 거짓 욕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을 단순한 욕구 충족을 위해 살아가도록 조장하며, 자신의 삶의 본질을 사고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렇게 인간이 허위적인 욕구 충족에 매달리는 것을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는 성공 지향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일차원적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덧 일차원적 사고에 찌들린 일차원적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일차원적 사고, 일차원적 인간, 일차원적 사회에서 벗어나 다차원적 사고, 다차원적 인간, 다차원적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첫째로, 거룩한 불만을 품어야 한다. 단순한 불만은 비난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거룩한 불만은 비전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된다. 느헤미야를 보라! 그는 주변 나라들의 위협에 놓인 민족을 위해 성벽을 세움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다. 70년이란 포로 생활로 체제에 순응하며 살았던 ‘일차원적 인간’들을 세워 52일이란 짧은 기간에 성벽을 재건했다. 이 위대한 비전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은 거룩한 불만족이었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3~4). 거룩한 불만은 하나님을 찾게 만들고, 하나님의 비전을 전수받는 계기가 된다.
둘째로, 버려야 한다.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느 1:11). 느헤미야는 왕의 생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지위도, 권력도, 재산도, 명예도. 느헤미야가 버린 것은 일차원적 인간의 거짓 욕구였다. 비워진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비전을 담았다. 버리지 않고는 채울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온통 움켜쥐고, 받아먹고,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버리는 다차원적 인간 모델이 없다. 우리가 모델이 되자. 어떻게 다음세대에게 모델을 제시하지 않고 온전한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셋째로, 세워야 한다. 느헤미야는 먼저 함께할 사람을 세웠다.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 2:18). 또한 느헤미야는 믿음을 세웠다. 성벽 재건은 단순히 적들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느 2:17) 성벽 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무너진 믿음을 세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신들의 전쟁이란 세계관이 주도했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신들을 믿는 잡족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는 것과 같다.
2008년 새해에는 일차원적 사회를 다차원적 사회로 변화시키는 오늘날의 느헤미야가 훈련되길 기대해본다.






_ 박성은 목사 (파이디온 선교회 대표)